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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시편1편 묵상 | 복있는 사람 vs 복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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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쫓아 산다. 겉으로는 고상한척 하지만 당장에 물질적인 어려움이나 건강을 잃으면 평소의 모습과는 너무 딴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을 종종보게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은 대부분 물질과 명예와 권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 우리에게 진정한 복은 어떤 것일까? 무엇이 복이며 왜 그것이 복인지를 시편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시편 1편 말씀은 두 종류의 사람을 명백하게 대비시켜 말하고 있다. 복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이다.

 

우선 우리가 관심이 있는 복 있는 삶일 것이다. 복있는 삶에 대해서 살펴보자.

 

복있는 사람은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복있는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복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지 않을까?

 

첫째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한다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정도를 걷는 것 보다 편법을 따를 때가 많다. 사람들은 그것을 융통성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편법이요 심지어 어떤 경우는 불법이다. 이것은 복있는 사람이 가야할 길이 아니다.

 

악인들은 항상 생각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찾는다. 남이야 죽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심지어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더 나아가 부모마저도 등을 돌리거나 협박까지 한다.

 

악인의 꾀는 우리에게 늘 가까이 있다. 그렇게 살면 좋을 것 같고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길 곧 얄팍한 꾀는 복있는 자의 길이 아님을 기억하자.

 

둘째 복있는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은 바로 죄인의 길이다. 이것은 얄팍한 꾀도 편법도 아닌 명확한 불법이며 죄의 길이다. 아예 대놓고 죄를 짓는 것을 말한다. 분명히 하나님이 죄라는 것을 말씀하심에도 모른채하고 행한다. 심지어 하나님께 저항하며 죄의 길을 택한다. 대 놓고 하나님의 길을 반대하여 걷는 것이 죄인의 길이다.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거침없이 따른다. 물질과 세상의 권력 그리고 거짓 명예를 쫓다가는 후회해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길을 가다가 망했는지를 보라.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신은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법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아무리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어도 진실은 알려지게되어있다. 설령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다. 죄에는 응당한 댓가가 항상 따르기 마련임을 기억하자. 이길은 복있는 사람이 결코 가지 않는 길이다.

 

셋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다. 오만은 무례함이요 극도로 자만하는 것이요 교만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비록 그들이 무례하고 오만하고 교만하지만 왜 이런 불편한 사람과 함께할까? 그들의 권력, 그들의 물질을 탐해서가 아닐까? 비록 더럽고 아니꼽지만 그들의 권력이 탐나서 그들의 물질이 탐나서 함께하는 것일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들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얻어서 권력과 물질을 얻었다고하자 그것이 어떤 행복줄 것인지 생각해 보자. 그들 앞에서 과연 진실하게 말할 수 있고 그들 앞에서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 권력과 명예가 탐난다고 해서 정직함을 버려서는 안된다. 그것은 복있는 사람이 가야하는 길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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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복있는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첫째,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했다. 여기서 '오직'이라는 말은 즐거움의 원천이 유일하다는 의미 일 것이다. 진정한 마음의 기쁨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한다는 것이다.

 

둘째,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율법을 즐거워 한다는 말씀은 그 다음에 나오는 율법을 밤낮으로 항상 묵상한다는 말씀이다. 밤낮으로 묵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진정 어떤때에 그런 경험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우리가 진정 즐거워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지루한 법이 없다. TV연속극을 보면서 지루해 하지 않는다.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지고 자신이 마치 연속극 속의 주인공이라고 된 것 처럼 느끼며 빠져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런 즐거움 이상이 되어야한다. 밤이든 낮이던 주님의 말씀이 너무 좋고 기대대고 궁금하고 기다려진다면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는 말일 것이다. 

 

셋째, 묵상하는 것이다. 묵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묵상하면 떠오르는 짐승이 있다. 소다. 소는 위가 네개나 있다고한다. 그래서 꼴을 잔뜩 삼켜서 위에 엄청난 양을 넣어두고 그것을 다시 꺼내서 되새김질 한다고 한다. 성경은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 하는 짐승을 깨끗한 짐승이라고 했다. 깨끗하다는 의미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데 합당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라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근성근성 읽어가서는 안된다. 그 말씀을 소가 되세김질 하듯 거듭거듭 생각하여 완전히 이해되고 소화된 상태에서 소가 먹은 꼴이 소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읽은 말씀이 우리의 영적인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들은 어떤 유익이 있을까?

 

첫째,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다.

 

시냇가에 심었다는 것은 나무가 자라는데 필요한 물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영원토록 공급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토록 공급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무엇을 공급받는가?

 

우리가 공급받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랑이다. 하나님은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듯이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엄마가 젖먹는 아이를 사랑하듯이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고 돌보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안에서 임재하시며 성경말씀을  통해서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면서 부모가 아기에게 젖과 먹을 것을 공급하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날마다 공급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악한 사단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런지 분별할 수 있게된다.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것 기뻐하시는 것 온전하게 인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게 된다. 말씀을 통해서 교훈받고 책망받고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하게 자라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그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둘째, 형통한 삶을 산다. 형통함이란 무엇인가? 

 

형통함이란 말씀을 통해 바르게 인도함을 받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로 곧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통함은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삶이다.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언제나 생기있고 긍정적이며 활력이 넘친다. 항상기뻐하고 쉬지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형통한 삶이다.

 

그리고 형통함은 곧 열매로 나타난다.

 

미움이나 다툼 시기 질투와 같은 악한 사단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된다.

 

먼저 사랑하는 삶을 산다. 이웃에 대해서 늘 사랑하는 마음이 넘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가득하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 구체적인 마음과 행위로 나타난다.

 

희락의 삶을 산다. 천국의 소망이 언제나 가득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경험한다. 주님때문에 언제나 즐겁다. 또한 그 기쁨이 이웃에게 하나님께 전달되어져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축복의 삶을 살게된다.

 

화평한 삶을 산다. 그에게 원수는 오직 사단 뿐이다.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만든다. 화평케 하는자가 되어 사람들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닮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오래참는다. 어떤 괴로움도 그를 흔들어 놓지 못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결코 그의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끝까지 오랫동안 참아 인내의 열매를 맺는다.

 

자비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자비한 마음이 성령의 감화를 통해 그에게도 역사하여 항상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다. 그가 원수이든 친구이든 상관없다. 모든이에게 주님처럼 자비한 마음을 가진다.

 

양선의 마음을 가진다. 그의 마음에 언제나 어질고 착한 마음이 있다. 성령께서 주신 마음을 쫓아 살면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악인도 죄인도 성령님을 통해 어질고 착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할 수 있다.

 

충성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설령 당장에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쳐 오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이겨낸다. 비록 손해가되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목숨마져 걸고 해내는 충성의 열매를 맺는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비록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어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부드러운 마음으로 순종할 줄 아는 온유함의 열매를 맺는다.

 

절제의 삶을 산다. 아무리 많은 재물 아무리 많은 명예 아무리 많은 권세가 있더라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내려 놓을줄 안다.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외하고 모두 하나님께 언제나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절제의 열매를 맺는다.

 

복 없는 사람, 악인들의 삶과 결국은 어떠한가?

 

악인들은 의인과 정 반대의 삶을 산다. 하나님의 말씀인 시냇가에 깊이 뿌리박지 못해 잎이 시들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찾는다. 명예를 얻으려고해보고 권세를 누려보고도한다. 재물을 얻기위해 혈안이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얻고도 그는 만족하지 못한다. 악인의 마음이 항상 공허하다. 삶에 만족과 기쁨이 없다. 이것 저것 손대 보지만 바람에 휘날려 다니는 쭉정이 처럼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

 

악인의 결국은 심판불을 견디지 못한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불에 그들이 공들여 세운것은 불에탄 쭉정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아들이 통치하는 나라에 악인은 영원히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곳으로 쫒겨나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의인은 모든 삶은 여호와께서 인정해 주시지만 악인의 결국은 심판이요 멸망인것이다.

 

우리의 삶의 방향은 분명해 졌다.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의의 길로 가는 것이다. 세상에 누가 무엇이라 하더라도 말씀의 시냇가에 깊이 뿌리박고 날마다 묵상하며 삶으로 살아내므로 의인의 열매 곧 복있는 사람의 열매인 성령의 열매를 날마다 맺는 삶을 살아 내는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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