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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을 왜 만들었을까? | 현륭원, 화산, 정약용, 거중기, 녹로

peter_66 2022. 8. 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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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을 왜 만들었을까? | 현륭원, 화산, 정약용, 거중기, 녹로

수원 화성을 왜 만들었을까?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서핑하던 중 우리 역사넷과 국사편찬위원회의 내용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이 그 배경과 이유를 정리해 보았다.

정조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여의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너무나 컸다. 그래서 그가 왕위에 오른 후에 아버지의 묘를 더 좋은 곳으로 옮기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무덤인 현륭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륭원에는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묘소가 있다는데 현륭원이 만들어진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소를 이장 할 생각이 있었고 1789년 7월 금성 위 박명원이 양주 배봉산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역인 영우원이 너무 비좁다며 서둘러 이를 옮겨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를 즉각 공론화했고 묘소로 수원의 읍치가 위치한 용복면 화산이 낙점되었다고 한다.

현륭원 조성을 위해 민가를 철거하는 작업이 시작 되었고 10월에 사도세자의 영구가 현륭원에 무사히 안장되었다. 현륭원의 뜻은 '현부의 은혜에 융성하게 보답한다'는 의미로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절실하면서도 지극한 효심을 표현한 것이다.

현륭원의 조성과 더불어 수원 신도시 건설, 화성 축조, 현륭원 행차의 과정을 통해 수원부와 인근 읍민들에게 여러가지 행정적 대민 특별 조처를 시행하도록 했다고 한다.


수원화성은 원래 화산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옮겨서 살게 할 계획 도시로 만들어졌다. 화성은 새로운 정치를 꿈꾸던 정조의 꿈이 단긴 신도시다. 1794년 1월, 정조가 즉위 한지 18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당초에는 10년 정도 예상했으나 1796년 9월 초에 완공되었다. 2년 9개월 정보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정약용이 고안한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거중기와 녹로 등 여러 기구를 사용했고 또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에게 적정한 임금을 지급했으며, 맡은 구역에 공사 책임제를 도입하여 책임감 있게 일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화성을 한양과 다른 길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해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곳을 상업도시로 만들었다고 한다. 상인들이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게 하도록 여러 정책을 폈으며 나라에서 돈을 빌려주고 상점도 만들어 주었으며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장과 저수지도 곳곳에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개혁을 밀어주는 곳으로 그는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군사를 이곳에서 훈련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려고 했다. 그래서 정치권력을 갖기 위해 싸우는 신하들의 대립을 조정하려고 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지 이유를 알고 더 흥미롭고 재미있어진다. 지난 번에는 왜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지를 알아보며 수원화성을 여행하며 공부할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오늘은 수원화성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과 사랑의 흔적이며, 국방과 경제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지혜의 결과이다. 이런 훌륭한 문화유산이 내가 살고 있는 수원 그것도 집과 지척 거리에 있다는 것이 참 뿌듯하다. 많이 공부하고 걸어보고 만져보며 유심히 관찰해보고 이 보배로운 유산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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